델피노 빌리지
결혼 40주년 핑게삼아 (코타키나발루에서 벌써 40주년 사진도 찍었는데)
이번엔 좀 급을 높여서
별장식 콘도로-
떠나기 전날 작은 녀석이 배가 아프다고 해서
혹시 요로결석이 아닌가 걱정했는데
또 괜찮다고 하여
안심하고 담날 아침에 떠났다.
그리고 우리는
즐거이 (뭐 사실은 즐거운 척하려다가 또 실망스럽기도 하고 뭐 늘 그렇듯이 그냥저냥)
1박2일을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와보니 녀석이 집에 있었는데
매우 괴로워하며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니 웬일이니?
우리가 떠나던 날, 우리가 떠날 때는 괜찮은 것 같았는데
우리가 떠난 다음에 매우 아파서
결국은 병원엘 가서
그날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아이고 불쌍해라!
근데 병원에서 처방해준 항생제를 먹었는데
제대로 밥을 먹지 못한 상태에서 약을 먹었기때문에
속이 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아이고 저런, 저걸 어떡해!
내가 있어야 밥을 해줬을 텐데
물론 밥이야 냉동실에 있었지만
그 아픈 와중에 밥을 꺼내서 데워서 다소곳이 먹을 형편이 안 됐던 것이다.
요로결석 수술후의 통증이 산통에 버금간다고 얘기하고 있단다.
그만큼 남자들 사이에서는 아프고 또 아픈 증상인데-
나는 이제 산통이 어땠는지 완전히 잊어버린 상태라
그것과 비교하여 얼마나 아팠을까 하는 짐작을 하는 것은 어렵다.
오히려 그 뒤에 일어난 팔꿈치 골절 후유증이 먼저 생각난다.
어쨌든
그것은 내가 당한 일이고 다 지나간 일이고
이것은 나의 자식놈이 당한 일이고 지금 현재 일이다.
내가 콘도에서 카톡을 해도 문자를 해도 답장이 없었다.
회사일이 바빠서 그러려니 그냥 무심했었다.
그런 상태라는 것은 짐작도 못했다.
녀석은 혹시나 우리가 알까봐 형한테도 얘기를 안했다고 한다.
그래도 회사동료와 (당연히 회사에는 알려야했으니까)
성당친구들과는 소통을 해서 위로의 말을 들으며 견디었다고 한다.
녀석은 언제 이렇게 컸을까?
ㅋㅋ 나이가 서른 중반 넘어 마흔을 향해가고 있는데
이런 정도는 당연한 거 아닌가?
그러나 옛날 어린 그 녀석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집에 있었더라도 뭐 특별히 해 줄 건 없었겠지만
그래도 밥이라도 떠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녀석 속이 그런 정도로 상하지는 않을 수도 있었을 텐데-
속이 아프고 뭐 얹혀 있는 것 같고 더부룩하고
말 그대로 속이 많이 상한 상태였다.
거의 빈 속에 약만 넣었으니 말이다.
내가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나마 이제 더이상 항생제는 안 먹어도 되는 상태가 됐으니 다행이긴 하지만
상한 속이 정상이 되려면 그 또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데
나의 무심함으로 해서 녀석이 안 겪어도 될 아픔을 겪었으니말이다.
뒷쪽에 보이는 낮은 집들이 델피노 빌리지.
여기는 델피노 호텔 옥상 전망대.
옛날엔 이곳에 낮은 동산이 있어서 거기서 울산바위가 제대로 보였다.
가는 날은 흐려서 울산바위가 안 보였는데 담날은 개여서 바위가 보였다.
갈 때마다 들러서 하루종일 쉬며 놀며 했던 신선 계곡 - 오랜만에 가 보는 것이다.
산책로는 옛날과 똑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