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미국 텔레비전 시리즈 드라마에 ‘원더우먼’이라는 게 있었다.
이쁘고 늘씬한 여자 주인공이 빙그르르 한 바퀴 돌면
별안간 입은 옷이 수영복으로 바뀌고
손목에는 이상한 신비한 팔찌를 찬 채
아주 힘이 센 여자로 변하는 그런 오락물이다.
만화가 원작인데 그것을 텔레비전 드라마로 만든 것이다.
이전에는 만화니까 가능한 이야기였지만
이제는 현실만 빼놓고는 활동사진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이야기가 되었다.
그 이쁜 여자는 힘이 어찌나 센지 무거운 것도 척척 들고 철창문도 휘게 해서 열고
못하는 게 없다.
그야말로 천하무적이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신기한 것이 힘 센 것이다.
그래서 원더우먼이지만 원더의 진짜 뜻을 나는 덧붙여 내 나름대로 해석을 해서
‘신기하고 신비한 그리고 약간은 정신상태가 이상스러운’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나의 원더우먼을 정의하고 사용했다.
그래서
나는 원더우먼이다.
원더우먼이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고 살았다.
늦은 나이에 다시 시작한 어려운 회사 생활을 할 때
많은 스트레스 받고도 굴하지 않고 아침이면 다시 출근하고,
후배상사한테 면박 받고도 굴하지 않고 미소로 답하면서 같이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이제 좀 그만 나왔으면 하는 윗사람눈치 뻔히 알면서도 모른 척 계속 월급 받고,
그랬다.
그래서 그 시절 친한 후배들과 그런 얘기 하면서 내가 항상 하던 말이 바로 그거였다.
'난 원더우먼이걸랑"
그리고
나는 가구 옮겨놓고 정리하는 것을 참으로 좋아했다.
내가 못 옮기는 것은 피아노와 장롱뿐 그 외의 것들은 내가 혼자서 다 옮겨 놓는다.
그리하여 어느 날 무거운 거 혼자 옮겨놓고 아이들이 놀라면 나는 또 말한다.
'엄마는 원더우먼이거든.'
지금까지는 나 스스로 원더우먼이라고 했지만
지난해 봄 큰 녀석과 같이 유럽여행을 갔을 때는 다른 사람으로부터 그 얘기를 들었다.
생각해보니 진짜 그렇게 불릴만했다.
스페인의 그라나다 기차역에서 내려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중국인 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거기 서있던 많은 관광객들 중에서 우리에게 말을 건 이유는 물론 같은 동양인이었기 때문이다.
(큰애가 먼저 말을 걸었던가 아니던가)
택시값이 많이 비싸지 않으면 같이 합승을 하면 어떻겠느냐는 얘기였는데(목적지는 똑같았으므로)
알아본 결과 너무 비싸서 그냥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해서 같이 버스를 타고 목적지에 내려서 인포메이션 센터엘 들어갔다.
거기서 숙소에 대한 안내를 받고 일단 알아보기로 하고 나왔는데,
다들 짐을 들고 지고 있어서 힘이 들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아내는 거기서 그냥 앉아 짐을 보면서 기다리기로 했는데
그 사람이 나 보고도 그러지 않겠느냐고 해서,
나는 안 그러겠다고 그냥 짐 메고 아들과 같이 가겠다고 했다.
왜냐하면 집보고 다시 돌아와서 다시 짐 갖고 걸어가고 하는 것이 번거로워
차라리 좀 무거워도 숙소가 구해지면 다시 돌아올 필요 없이 거기서 그냥 짐을 푸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나를 보고 그러는 것이었다.
‘유 아 슈퍼 마더’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예스 아이 엠 원더우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말을 한 번 하고나면 나는 진짜로 내가 원더우먼이 된 듯한 착각에 사로잡혀
갑자기 기운이 세지는 것이다.
그래서 육체적 기운도 생기고 정신적 기운도 생긴다.
비록 인생의 ‘살’은 다 풀어서 무심에 가까워졌다고는 해도
내가 여전히 인간인 고로 때로는 우울하고 찜찜하고 쓸쓸하고 불안하고 서운하고 걱정되고하는데-
이럴 때는 역시 나의 취미이자 특기인 무언가 정리를 하는 것이 묘약이다.
이럴 때 (그러려면) 다시 나는 옛날의 힘센 원더우먼으로 돌아가야한다.
무거운 침대 두 개를 나 혼자서 이리저리 바꿔 놓고 나면
방 정리, 내 마음 정리, 내 몸 정리가 다 되고
나는 다시 옛날이 아닌 지금 현재의 원더우먼이 되는 것이다.
그랬다.
그렇게 하면 나는 다시 원더우먼이 되었었다.
얼마 전 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안된다.
원더우먼이 아무리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마술의 시간이 다 지나가버렸다.
그래서 육체적인 원더우먼은 더 이상 될 수가 없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갑자기 기운이 빠진다.
있는 힘도 더 빠진다.
그렇지만 기운 빠진다고 그냥 두고 볼 수만도 없으니
이제는 정신적 원더우먼이라도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이 더 어려운 일이지만-
맨 처음 내가 해석한 대로
‘신기하고 신비한 약간은 정신상태가 야릇한’ 원더우먼이 되어야한다.
그래서 그 시절 그 힘으로 어렵고 좌절스러운 상태를 버텨냈듯이
지금 더 어렵고 고통스럽고 실망스럽고 슬픈 상태를
나 나름의 원더우먼이 되어 이겨내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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