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니의 동생으로 태어나
성격도 그리 욕심이 많거나 야무지지도 않게 태어나
언제나 엄마 앞에선 언니 뒤에 서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게 불만이라고 느껴 본 적도 없고
엄마가 나에게 조금 소홀하다고 느껴 본 적은 더더구나 없다.
그리고 물론 엄마가 그리하지도 않으셨다.
언니의 동생은 그냥 그렇게 지내는 것이려니 하면서 살았다.
그렇게 잘 살면서 나는 또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라고 생각했고
나이들어가면서 나는 또 세상에서 우리 엄마를 제일 존경하게 되었다.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우리 엄마가 하는 엄마 노릇이 결코 쉬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엄마랑 같이 교류하던 나의 50여년 동안
엄마한테 섭섭했던 적이 물론 있었던 듯도 하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런 느낌을 갖고 있었던 적이 한 번도 없는 듯하다.
그냥 물 흐르듯이 큰 껀수없이 지냈다.
내가 엄마의 마음을 오해한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그러나 나는 엄마에 대해 섭섭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 오해는 없었던 것으로 간주해도 될 듯하다)
엄마는 나의 마음을 오해한 적이 물론 있다.
그리고 그 오해를 결국은 풀지 못하고 가셨다.
왜냐하면 내가 그 오해를 풀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나는 그 오해를 굳이 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엄마가 나를 오해하든말든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데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당연히 나는 믿어의심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내 믿음은 물론 맞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에 대한 오해로 꽁하고 있다가 사랑까지 깎을 엄마들이 세상에 도대체 어디 있단 말인가 말이다.
잠시 서운할 수는 있지만 한두시간만 지나면 다 또 잊고서 고슴도치 엄마들이 될 텐데.
그리고 내가 오해를 굳이 풀려고 하지 않았던 이유의 또 한 가지는
내가 내 마음을 설명하기가 참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그 미묘한 마음 속을 말로 풀어 엄마한테 설명한다는 것이
문자그대로 쉬운 일이 아니었고, 쑥스럽기도 하였고,
또 한 가지는 그런 말을 하면 오히려 엄마가 상처받지 않을까하는
그야말로 노파심이 있어서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다소 말이 길어져도 내가 내 마음을 명쾌하게 내보였던 게
엄마를 위해서 참으로 더 좋은 것이었다.
물론 나를 위해서도.
물론 엄마는 한두시간, 아니면 하루이틀 지나서 그 사항을 잊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생각이 나는 것을 보면
엄마도 가끔가끔 생각이 나서 나에게 서운한 마음을 잠재적으로 갖고 있었을 지도 모르는데.
이제 와서야 엄마한테 해명을 한다.
그 때의 나의 진심을 설명한다.
이제는 그런 나의 미묘한 마음을 얘기해도 별로 쑥스럽지 않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못났다는 것을 세상에 대해 얘기해도 별로 창피하지 않기 때문에.
고3때 여름 어느날 엄마가 나에게 구두를 사주신다고 명동으로 가자고 하셨다.
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엄마의 제안을 거절하면 엄마가 서운하실 거 같아
같이 나갔다.
그 외출은 그렇게 처음부터 기꺼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니 그 이후 상황이 그렇게 진척된 것은 당연한 결과다.
엄마는 명동 뒷골목에 있는 수제화 구두집엘 들어가셨다.
그리고 이것저것 골라보며 나 보고도 골라보라고 신어보라고 하셨는데
나는 영 마음이 내키지를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내 입을 쑥 내밀고 말도 안하고 우거지상만 하고 엄마에게 협조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래도 엄마는 야단도 안 치고 싫은 내색도 안 하고 나가지도 않고 계속 구두를 고르고 계셨다.
그런데 계속 내가 골을 내고 있으니까 드디어 그 구두집 주인도 기분이 나빠졌다.
'근데 얘는 왜 이렇게 골을 내고 있어요?'
하고 주인이 엄마한테 물었다.
그러자 엄마는 대답하셨다.
'저기 안에 있는 유명한 구두점에 안 가서 그렇지요 뭐.'
당연하게, 대수롭지 않게, 철없는 나를 나무라는 듯.
그런데 나는 그 속에서 엄마의 나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같이 느꼈으니
그것이 나의 요즘 시쳇말로 '오바'였을까?
어쨌든 엄마의 의도대로 하여간 나의 구두 한 켤레를 거기서 사갖고 왔고
나는 물론 그 구두를 마르고 닳도록 잘 신었다.
그러면 거기서 그렇게 골을 낸 나의 본심은 무엇이었을까.
무얼 엄마가 오해하셨던 걸까.
엄마가 구두를 사 준다고 할 때부터 나는 그게 싫었던 거다.
왜냐- 하면-
나는 구두를 신을 자격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나의 생각이다.
나는 당시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참 별볼일없는 아이인데 엄마한테서 과분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도대체 왜 그런 생각을 내내 갖고 있었는지 모르겠으나
어쨌든 당시 나의 그런 마음은 진짜였다.
나는 늘 자신이 없었고, 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가는 여고엘 다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늘 못났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운동화만 신고다녀도 과분하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가 매일 도시락을 싸주시는 것도 너무 미안했다.
그건 겸손도 아니고 지금 생각해보면 참 그렇게까지 나 자신을 비하시킬 이유가 없었는데도
왜그리 나는 내가 그리 못났다고 생각을 했었는지.
그러니 내가, 그렇게 못난 내가
구두, 그렇게 비싼 구두를 신는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니 처음부터 내키지 않았을 수밖에.
그렇다고 엄마의 제안을 거절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하면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 같기에.
그래서 엄마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 기껍지 않은 채로 엄마를 따라나서서
결국은 엄마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해버린 것이다.
엄마는 나를 오해하고, 나를 더 좋은 구두점으로 못 데리고 간 것을 아파하셨을 테니 말이다.
내가 그 때 내 마음을 어눌하게나마 솔직하게 엄마한테 얘기했더라면
엄마는 상처 안 받고 나도 그날부터 자신감을 찾았을 텐데.
내가 나의 마음상태를 얘기했다면 엄마는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무슨 소리, 왜 니가 못났어.'
거기까진 확실한데 다음엔 모르겠다.
어떤 구체적인 예로 나를 안심시키셨을지.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러 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 낳고 애들도 많이 컸다.
나는 아파트에 살면서 어릴 때 누리지 못했던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살고 있었다.
샤워도 설겆이도 뜨거운 물로 펑펑.
엄마네 집엔 그때까지도 보일러시설이 잘 안 돼 있어서 겨울에도 설겆이를 찬물로 했다.
친정엘 가면 늘 엄마가 부엌일을 하시니 나도 부엌일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식탁 차리는 걸 돕고 식사 끝내고 나서 설겆이는 내가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내가 안 하면 엄마가 하셔야하니
늙으신 엄마가 설겆이하는 걸 나이 든 딸이 그냥 보고 있는 건 말도 안된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뱃짱을 가진 딸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그 날도 (물론 겨울이었겠지) 설겆이를 하는데 물론 물은 차거웠다.
늘 그랬지만 그날따라 참 짜증이 났다.
내가 설겆이를 하는 것이 짜증이 나는 게 아니었다.
물론 물이 차가워서 손이 시려워서 짜증이 나는 것도 아니었다.
엄마가 이렇게 늙은 지금까지도 늘 부엌일을 해야하는 것이 짜증났다.
그리고 이런 지경에 부엌 여건이 좋기는커녕 물까지 차거운 것이 짜증났다.
이런 엄마의 상황을 개선시키거나 도울 수 없는 나의 처지가 짜증났다.
그래서 내가 자꾸만 '물이 차거워, 물도 차거워' 하면서 궁시렁대니까
엄마가 나한테 짜증을 냈다. 서운한 마음이 드셨던 게다.
딸년이라고 모처럼 와서 그잘난 설겆이 좀 해준다면서
엄마의 부엌이 불편하다고 물이 차갑다고 불평만 해대니
서운하셨던 게다.
엄마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편리한 아파트에서 살다가 엄마의 불편한 구식 부엌에 와서
잘난 척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을 거다.
그러나 엄마가 나한테 궁시렁댄다고 야단을 쳤을 때도
나는 엄마의 오해를 풀어드리지 않았다.
나의 사실 본마음은 이러저러한 것이라고 말을 하면
엄마의 마음이 더 아플거라고 나는 그렇게 '오바'하고
그냥 내가 오해받고 철없는 나쁜 딸이 되는 것으로 끝냈다.
그리고 그후로도 오랜동안 엄마와 나는 아무런 사연없이
잘 지냈다.
엄마가 나를 오해한 사항에 대해서도 다 잊어버리고 잘 지냈다.
엄마도 다 잊어버리고 잘 지내신 것 같다.
그러다 문득
한참 아주 한참 지난 지금 이 마당에 다시 생각이 난 것이다.
엄마의 오해를 풀어드리지 않은 내가 과연 잘 한 것일까.
내 생각과 달리 엄마는 나를 계속 오해하고 사신 것은 아닐까
그래서 계속 나한테 서운한 마음을 갖고계셧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지금와서 그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직도 의식이 있고 기억이 있는 내 마음을 위안하기 위하여
이제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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