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옛날에 옛날에(4)-겹치기 독서

여왕폐하님 2002. 5. 8. 01:19
사실은 '신문을 확실히 더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게도 되지만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나는 신문보다는 다른 책을 읽는 것이 더 좋으니 말이다.
물론 내 맘에 드는 책이지만 말이다.

내가 읽던 책을 책상 위에 덮어둔 채
딴 책상 위에 있는 책들을 그냥 들쳐보다가 우연히 눈에 띄는 글들,
계속 읽어보고 싶은 내용이 나타나면
그 책을 집어들고 자료실 안쪽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거기서 그 책을 정신없이 읽다가 문득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아냐, 참! 오늘 온 석간을 봐야 되는데,
어제도 안 봤는데-
석간신문 두 개만은 확실히 보자고 얼마 전 결심했잖아?
그래서 하루이틀정도 열심히 보니까
기사가 눈에 들어올려고도 했었잖아?'

그러나 할 수 없다.
읽던 책 마저 읽고, 그리고 나서 내 책상에 가서 신문을 보도록 하자.

그래서 책읽기는 계속되지만
이렇게 되는 날에는 물론 석간신문을 읽을 기회를 다시잡기가 힘든다.
그 날은 그냥 그 책을 읽는 거로 끝날 수밖에 없어지는데,
그러나 그 책이라도 웬만큼 읽으면 다행이다.
대부분은 채 다 읽지 못한 채
다시 내 책꽂이의 책들만 밀려가게 하니까.
그러나 물론 결국 나는 그 책들을 읽기는 다 읽는다.

신문이야 하루 흘러가면 다시는 읽을 수가 없지만 (읽을 필요가 없어진다는 뜻이다)
책이야 어디 그런가?
두고두고 늘 며칠을, 몇 달을,
몇 년을 계속해서라도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내 사무실 책상 책꽂이에
내가 읽은, 읽던, 읽는, 읽을 책들을 주욱 꽂아놓고
시간날 때마다 그 중에서 그 시간에 알맞은 책을 골라 읽는다.

집에 가면 내 작업대 위에 있는 책꽂이에 책이 꽂혀 있고,
침대 머리맡 책꽂이에도 책이 꽂혀 있다.

나는 책을 읽는데 책 한 권을 들고 다니면서
계속 그 한 권을 다 읽을 때까지
계속해서 그 책만 읽는 게 아니라
사무실과 집에 다른 책들을 주욱 놓아두고
사무실에서는 사무실에 있는 책을,
집에서는 집에서대로 또 다른 책을
각각 계속해서 읽는다.
사무실에서도 내 책상 위에서 읽는 책이 따로 있고
자료실 서가 속에서 읽는 책이 따로 있다.
집에서도 작업대 앞에서 읽는 책과 침대에서 읽는 책이
따로 있다.

참 이상한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그렇게 무엇이든지 분산시켜서 하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워낙 복잡한 생활에 적응을 하다보니까
이제는 독서까지도 그렇게 각각 분리시켜서 할 수 있게도 되었다.
마치 배우들이 겹치기 출연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 것이다.

겹치기 출연을 하면서도 배우들이 그때그때 그 배역에 맞는 연기를 잘 해내듯이
나도 이제 '독서 겹치기하기'에 이력이 생긴 것 같다.
서너 군데에서 각각 다른 책을 독립적으로 지속해서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회사에서 A라는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내 감정, 내 상태, 내 사고의 분위기 같은 것이
집에 가서 B라는 책을 마주 대하면 또 그것에 따라 변화되어서 맞추어지고 몰입할 수 있게 된다.

그것도 습관인가?
과연 어떻게 읽는 것이 좀더 많은 책을 좀더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을까?
나는 책을 많이 읽고 싶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인데,
내가 그렇게 책을 이동시키지 않고,
책은 고정시켜놓고 나 자신을 이동시키면서 독서를 하기로 한 것은,
나야 어차피 늘 이동을 해야하는 처지지만
책을 이동시키느냐 마느냐하는 것은 순전히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문제이고,
또 책을 가지고 다니다가 잃어버린다든가
아니면 혹시 깜박 잊고 안 가지고 왔다든가 할 때의 낭패감, 안타까움,
그런 것에서 해방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책을 항상 그냥 그 자리에 놓아두면 아무 문제가 없겠구나 싶었다.
그 책을 읽고 싶고 마침 그 책을 읽을 시간이 생겼는데도
그 책을 회사로,(또는 집으로) 안 갖고 왔기 때문에 읽을 수 없다면
얼마나 아쉬운가?
물론 그 책 아닌 딴 책을 읽을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역시 동시에 겹치기로 읽는 책이 생기게 되는 셈이니까
지금 내가 겹치기 독서하는 것과 똑같은 상태가 되는 셈이다.

신문 읽는 것도 나의 직업상 중요하다고 할 수 있으나
읽기 싫은 신문보다는 읽고 싶은 책을 읽는 것이 난 더 좋다.
사실 딴 신문이야 또 안 읽는다고해도,
또 우리신문이야 읽을 수 밖에 없으니,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초정보정도는 별로 안 알게되지도 않는다.

나는 지금 내 자리로 돌아가 우선 석간신문을 들춰보아야겠다.
그래도 궁금하니까.
그러나 얼른 보고 나서 내가 읽던 책을 다시 보아야지.
빨리 그 책을 끝내고 얼른 새 책을 시작하고 싶다.
읽고 싶은 책들은 너무 많은데 속도가 나지 않는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속독법을 배워둘 걸 그랬지.
1992 . 2 . 28. 4:30 PM. 자료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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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사진-한겨레 조사부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