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RE]왜 글 안 쓰시는겁니까.

여왕폐하님 2002. 9. 26. 18:56
'왜 글 안 쓰시는겁니까?'
이렇게 물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처음엔 그냥 독자란에다 답장을 쓰려고 했었는데
갑자기 글 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썼습니다, 오랜만에.


[답장] 왜 글 안 쓰시는 겁니까?

처음엔 어쩔 수 없어서,
아니 어쩌지 못해서,
아니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글을 썼다.
내 마음을 어떻게 가눌 수가 없어서
글을 썼다.
글이라도 쓰지 않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애서
글을 썼다.
글로라도 풀어놓지 않으면 내 가슴이 터질 거 같아서
글을 썼다.

다른 방도를 찾지 못했었다.
내 마음을 진정시킬
다른 방법을 몰랐었다.
내 마음을 안정시킬
다른 길을 몰랐었다.
내 가슴을 평온스럽게 할 수 있는
아주 평온스러운 길이 있다는 걸
몰랐었다.

글을 쓰는 게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내 마음을 다소나마 잠시나마 가라앉히는 데는
글을 쓰는 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글을 썼다.

쓰다보니 재미가 났다.
글을 쓰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무언가 여러 가지를 글을 가지고 표현을 한다는 게
제법 재미가 있었다.
그래서 글쓰기를 그치지 않았었다.

어느날 갑자기
이제부터는 글을 안 써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내 가슴이 진정되었는데
내 마음이 안정되었는데
그리고 이렇게 가슴이 평온스러운데
구태여 글 쓰는 걸로 내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글 쓰는 일을 아주 그만둘 수는 없을 거다.
가끔은 또 옛날처럼 마음이 산란해질 수도 있겠고
갑자기 또 글 쓰는 게 재미있어질 수도 있을 테니까.

어쨌든 그림도 글도
자유다.
내 영혼의 자유를 위해서만
(그림을) 그리고 또 (글을) 쓸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