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중학교 3학년때였던가 고등학교 1학년때였던가 그때 우리 집에 '아시아 매거진'이라는 잡지가 가끔 배달되고 있었다. 커다랗고 (아마 요즘 보통 여성잡지들보다 조금 더 컸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넓적한 모양의 영어잡지였는데 종이가 얇고 야들야들했다. (나의 기억엔 그렇다)
그 잡지가 어떤 연유로 우리 집에 배달되었는 지는 모르겠으나 하여튼 그 무렵 그 잡지는 매우 색다르고 볼만했다. 영어로 쓴 내용이야 거의 안 읽는다해도 거기엔 사진이 많이 실려서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그 책 한 페이지에 아주 아름다운 사진이 실려있었다. 그 사진은 늘 비슷한 페이지의 오른쪽 3분의 1가량을 맨 위부터 맨 아래까지 채우고 있었다. 아니, 사진은 그 공간의 위쪽 3분의 1정도를 차지하고 있었고, 맨 위서부터 서너줄 그리고 사진 아래에는 다른 이야기들이 쓰여있었다. 아마도 그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였을 것이다.
나는 물론 그 이야기가 무슨 내용인지 처음엔 전혀 몰랐다. 나는 그냥 그 사진만 보고 그 사진에 반해버렸다. 그리고나서 알게 된 것이 그 사진은 독일 (뮨헨 남쪽 퓌센 지방에서 가까운 '호헨슈반가우'라는 마을)에 있는 유명한 성이고 그 성의 이름이 노이슈반슈타인('새로운 백조의 성'이라는 뜻)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아름다운 성을 구경하러 독일로 관광을 오라는 광고였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태까지 그렇게 아름다운 성은 처음 보았다.(지금까지도 그렇게 생각한다)
잡지에 실린 사진은 성을 약간 위에서 찍은 모습인데 그 성 뒤로 커다랗고 맑은 에메랄드그린 빛깔의 호수가 보였다.
그 성의 사진을 보자 내 가슴은 뛰었다. 그 성은 정말로 내가 어렸을 때 동화를 읽으면서 상상하던 그런 아름답고 환상적인 모양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선 그 잡지에서 그 사진을 오려 액자를 해서 내방 벽에 걸어놓았다.( 지금도 그 사진은 내방 벽에 걸려 있다, 누렇게 색이 바랜 채로.) 그리고 그 사진을 보면서 꿈을 꾸었다.
그 시절 외국여행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꿈같은 이야기였다. 유럽은커녕 가까운 일본은커녕 우리나라의 제주도는커녕 설악산조차도 가기 힘든, 감히 갈 생각도 못하던 때였다.(경주도 고등학교 수학여행 덕분에 처음으로 가 보았다)
나는 내 생애 언젠가 독일에 가서 저 아름다운 노이슈반슈타인성을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의 그런 생각은 어디까지나 그냥 막연한 상상과 이루어질 수 없는 공상이라고 나 자신 결정짓고 있었다. 그만큼 그 성을 직접 본다는 것은 실현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고, 그냥 공상하고 꿈꾸는 것만으로도 나는 만족했다.
그 성은 언제나 나의 꿈속에 있었고, 늘 그 모습을 보면서 꿈을 꿀 수 있어 참으로 행복했다.
세월이 흘러 이제 유럽여행은 더 이상 꿈이 아닌 시절이 왔다. 그래도 나에게는 여전히 유럽은 꿈이고 노이슈반슈타인은 꿈의 성이었다. 나는 그 꿈을 구태여 실현시키고자 일부러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할 맘도 없었다. 그냥 꿈으로 놓아두어도 이제는 아쉬움을 버릴 수 있는 나이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그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다, 아주 뜻밖에. 나는 일본도 건너뛴 채 유럽으로 먼저 날아갔다. 그리고 노이슈반슈타인이라는 나의 일생일대의 꿈을 실현시켰다.
노이슈반슈타인 성을 향해 달려가는 유럽버스 안에서, 나는 거기 탄 여행객들과 운전기사에게 나의 꿈의 성에 대해 얘기를 해줬다. 사람들은 아주 재미있게 그리고 감탄을 하면서 내 얘기를 들었다. 드디어 노이슈반슈타인 성이 저 멀리 보이자 사람들이 소리쳤다.
'저기 너의 꿈이 있다'
그러자 운전기사가 말했다.
'내일이면 저 성을 볼 것이다. 그러면 저 성은 더 이상 꿈이 아니다.'
그러나 노이슈반슈타인은 아직도 여전히 나의 꿈이다.
<그림='마법의 성' >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파아란 하늘에 하아얀 꽃이 피어 있다 (청주 상당산성) (0) | 2001.04.21 |
---|---|
산은 늘 봄이다 (지리산) (0) | 2001.04.14 |
2000년 유럽여행-나홀로 여행 (0) | 2001.01.13 |
2000년 유럽여행-철학자의 길 (0) | 2001.01.12 |
2000년 유럽여행-하이델베르크의 피터 (0) | 2001.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