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산은 늘 봄이다 (지리산)

여왕폐하님 2001. 4. 14. 21:09
산은 늘 봄이다. 수북이 쌓여있는 누우런 솔가리 속에서, 바위를 덮고 있는 하아얀 눈이불 속에서 산은 늘 다시 봄으로 태어난다.

신문사라고 들어와서 처음으로 기사를 쓰기 위한 출장. 지리산. 4월.
은근한 기쁨으로 설레고 걱정으로 설레고.

나는 또다시 작은 스케치북을 챙겼다. 물론 사진기자가 있었으니 사진기를 챙길 필요는 없었겠지만 나는 카메라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못했다.
나는 지리산의 아름답고 신비스런 모습을 담아서 내가 소유하고 싶었지만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나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림이라는 수단을 생각했다. 일부러 생각한 것이 아니라 저절로 떠올랐다.

나는 색채표현도 하고 싶었지만 그림 그리러 가는 것이 아니고 기사를 쓰기 위한 취재를 하러 가는 것이고 시간도 빠듯했기 때문에 그리고 짐도 줄여야 했기 때문에 작은 스케치북 한 권과 4비연필 한 자루만 챙겼다. 혹시 시간이 있을까 없을까 그릴 수 있을까 없을까 생각하면서.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이상하다.
나는 처음 가는 출장으로, 아니 처음으로 신문에 정식으로 기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다소 흥분된 상태였고 약간 긴장된 상태였고 많이 불안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이 떠 오르고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서 준비를 했으니 말이다.

4월의 지리산은 환상적이었다.

사실 산이란 늘 환상적이다. 멀리서 보는 커다란 산의 무거움이나 가까이 보이는 작은 산의 아기자기함이나 옛날 어렸을 때 올라 보았던 집 뒷동산의 귀여움이나 산은 늘 환상적인 것이다.

거기 모든 것이 다 있다. 아름다움, 신비로움, 안타까움, 즐거움,기쁨, 슬픔, ... 그러나 무엇보다도 산의 가장 큰 매력은 침묵이다. 그 모든것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자랑하지 않는 침묵이다.

속세에서는 침묵이 별로 대우를 받지 못한다. 더구나 요즘세상에서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그 사람이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못난 사람이라고 오해받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러한 속세의 속인들도 산의 침묵만은 무서워한다. 그 진가를 알아준다.

게다가 지리산,

전해 가을에 지리산엘 오른 적이 있었다.
사실 오르고 다시 내려오고 하는 동안은 산행 자체가 너무 힘에 겨워서 주위의 아름다움이니 신비로움이니 하는 것들은 느낄 여유가 없었다. 빨리 올라가야 시간 맞춰 내려갈 수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일행을 따라 일행에 너무 뒤처지지 않으려고만 애를 쓰며 열심히 걸었는데 나중에는 너무도 힘이 들어서 이러다가 계곡으로 떨어져 죽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조차 들 정도였다. 그러나 나는 다행히도 죽지않고 성공적으로 지리산행을 마쳤다.

그런데 당시에는 못 느꼈지만 시간이 갈수록 지리산의 그 커다란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듬직하고 큼지막한 사랑하는 남자의 가슴같은 느낌을 말이다.

거기에 4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은 봄이고 제일 좋아하는 달은 3월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봄은 따뜻하고, 앞으로 계속 따뜻할 거고 3월은 봄이 시작되는 달이기도 하지만 나의 생일이 들어있는 달이기 때문이다.

나는 추위를 싫어하고 따뜻한 걸 좋아한다.
나는 사람들이 다 나처럼 따뜻한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따뜻하면 나른해서 싫대나?
그러나 역시 따뜻해야 활개를 펼 수 있으니 역시 봄이 좋다.

4월이면 정말 봄의 따뜻함이 시작되는 달이다.
3월은 봄이라도 사실 따뜻과는 거리가 있지만 4월부터는 이제 따뜻함을 기대해도 좋은 달인 것이다.

산의 4월이라는 것은 말하자면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인 것이다.

지리산의 4월은 기대만큼, 아니 기대보다 더욱 좋았다. 물론 내가 가진 글쓰기에 대한 뿌듯함 때문에 더욱 좋았는지도 모르지만.

기차역에 마중나온 취재대상 인물인 피아골 산장관리인으로 잘 알려진 함태식옹을 따라 지리산의 왕시루봉을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평지에서는 따스했던 날씨가 등산을 하니 더운 날씨로 변했다. 물론 날씨가 변한 것이 아니라 몸의 상태가 변한 것이지만.

4월의 산이라 색깔이 좋았다. 옅은 초록, 노랑, 연갈색, 연두, 그리고 분홍, 보드랍고 깨끗한 젖빛까지 참으로 아름다운 산의 색깔들이었다.
그 아름다움과 거기서 뿜어져나오는 환희를 어떻게 글로 표현할 수가 있을까? 특히 그때에 내가 느낀 기쁨과 기대에 찬 흥분을.

같이 산을 오르면서 얘기하고 보고 느끼고 하는 것이 취재였다. 그 분위기와 그 느낌을 기사 쓸 때까지 계속 간직하고 있으면 되었다. 너무 좋은 분위기라 분위기에 빠져서 좋은 글이 안 나오면 어떻게 하나?

지리산에서 뜯은 산나물로 저녁을 먹었다. 맛이 정말 일품이었다. 지금 이글을 쓰면서 그때의 밥상을 생각하니 입에 침이 고인다.

산장에서의 잠도 좋았다. 옛날 서양 사람들이 만들어서 쓰던 산장이라서 시설도 제법이었지만 서부영화에 나오는 집의 장식물들과 물품들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재미있었다.
진짜 나무장작을 때는 벽난로가 있었는데 장식품이 아닌 실제로 쓰는 것이었다. 우린 물론 그 벽난로에 나무장작을 때서 산장 실내를 훈훈하게 하고 거기 둘러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그 기분이라니!

삼각모자를 쓰고 있는 무쇠 주전자에 물을 끓여서, 서부의 카우보이들이 커피를 마실 때 쓰는 커다란 머그잔을 꺼내 커피를 담았다. 낡은 나무 탁자 위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가 있었다.

반원형으로 생긴 군막사(?)같이 만들어진 산장에는 다락방도 있었다. 다락방을 보자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이 났다. 아이들이 보았으면 얼마나 좋아하며 거기서 놀고 또 잤을까?

낮에 들은 귀신얘기가 생각나서 조금은 잠을 설치기도 했던 그 밤을 지나 찾아온 새벽.

드디어 지리산 4월의 새벽!

아침잠이 무척 많은 나지만 모처럼 얻은, 언제 또다시 얻을지 모를 이 귀중한 새벽을 그냥 물러가게 할 수는 없었다.

일찍 일어났다. 그리고 먼저 산장 안에 있는 화장실부터 갔다. 지리산 깊은 산중에서 서양식으로 만든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하다니 참으로 의외였고 기분좋고 편하기도 했지만 또 어쩐지 안 어울리는 일 같기도 했다.

산장문 밖으로 나오니-- 거기 퍼져 있는 아침안개, 내가 정말 많이 좋아하는, 옛날 어렸을 적부터 특히 계속 좋아하고 있는 아침안개가 있었다.
아침안개 속에서 피어나는 산의 향기. 엉클어진 가시나무 덩굴 사이로 새어나오는 지리산 새벽의 냄새.

아-- 감탄사조차 나오기 힘든 그 환희.
나는 그냥 그 아침안개에 파묻혀 버리고 싶었다.

일출을 보러 잠시 올라갔다. 커다란 산죽밭을 지나쳐 오른 그 근처 봉우리에 올라가 해를 기다렸다.
저 아래 저 멀리서부터 하늘이 맑아 오는 것 같았는데 다시 구름이 가리고 다시 맑아오다가 다시 구름이 오고, 결국 해 뜨는 것을 확실하게 가늠할 수가 없었다.

그 새벽, 그 아침에 안개비가 오고 있었다.
비는,내리지 않고 촉촉히 옷을 적시면서 내 주위를 감돌며 나를 황홀경에 빠뜨리고 있었다.

뽀얀 안개가 가시지 않은 그 청명한 산 속에서 얼굴에 흩뿌려지는 그 비를 맞으며 나는 말했다.

"아 너무 좋아. 올 한해의 나는 이것으로 충분해. 앞으로 어떤 나쁜 일이 내게 와도 지금의 이 황홀한 기분으로 다 지워버릴 수 있어. 이 경험으로 올해의 모든 것은 다 끝났다."

(결국 나의 이 말은 불행히도 현실이 되고야 말았다. 그 출장 이후 얼마 안돼 나는 내 일생에서 가장 큰 좌절을 맛보게 된 것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너무도 별 거 아니지만 당시엔 정말 심각했었다.)

취재는 전날 다 끝난 거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다음 날 하산할 때까지 나는 그 근처의 풍경을 조금 그릴 시간이 있었다. 그림이래야 물론 32절지 조그만 스케치북에 연필로 대충 끄적거리는 것이었지만.

그 왕시루봉 산장과 그 근처의 돌계단과 나무들, 그런 것들을 그려보았다.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리는 것은 즐거웠다. 자연의 모습을 그린다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익히 알기 때문에 많이 실망스럽지도 않았다.

하여튼 나는 지리산의 극히 일부분이긴 하지만 내 손으로 그려보았으므로 그것으로 대충 나의 시도는 끝내고-더 이상 어떻게 욕심을 낼 수 있을까보냐? 나의 그림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데- 어쨌든 나로 하여금 그릴 수 있게 그냥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참아준 지리산한테 고마움을 느끼는 선에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이 간 사진 기자와 함께 함태식옹의 얼굴을 스케치했다. 물론 그 또한 별볼일 없는 그림이었지만 내가 그린 것이기에 간직을 하려고 했으나 함옹의 고집으로 그 그림은 왕시루봉 산장에 놓아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왕시루봉 산장을 바깥에서 보고 그린 그림은 액자에 넣어 마루 장식장 위에 놓아두었다가 한겨레 미술반 전시회에 내걸기도 했다.

그 그림을 보면서 그날 그 아침의 안개를 생각한다. 좋았던 그해 92년 4월의 지리산을 생각한다.

언제 또 거길 가서 그 싱그럽고 향그러운 지리산의 새벽공기를 다시 느낄 수 있을까?

<그림=지리산 왕시루봉 산장
사진=함태식옹 얼굴을 스케치하는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