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나는 내 실력 되는대로 그림을 그렸다.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하룻만에 다 완성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림이 부실해서 그런 것이었겟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림이 월등히 좋아진 것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어떻게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지금이 게을러져서 그런 건가? 워낙 늦게 그림을 시작해서? 그렇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 시절에는 야외스케치를 간다하면 늘 부지런을 떨어서 오전에 다 자리잡고 밑그림 그려놓고 점심을 먹었는데 그 뒤 회사 동아리에서 야외스케치를 갈때는 오전에 시작해 본 적이 없다. 늘 점심을 먹은 뒤에야 시작했으니까. (물론 요즘은 아니다.)
왼쪽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고 오른쪽에는 절의 담벼락과 치켜올라간 처마가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가운데 조그만 뒷마당의 흙이 보이고 조금 멀리로는 굴뚝도 보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그 풍경에서 마음에 들고 그래서 하이라이트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왼쪽의 커다란 푸른 나무 아래로 작지만 화사하게 피어있는 분홍색 진달래였다. 나는 그 진달래를 아주 예쁘고 눈에 띄는 분홍색으로 선명하게 칠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진해지지도 않고 선명해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색을 눈에 띄게 강하게 쓴다는 게 그 시절의 내게는 참으로 어려웠다. 아마도 그림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한 색깔만 썼던 것 같다.
하여튼 나는 그때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 분홍색을 살리려고 애써서 그림을 일단 완성시켰다.
그 그림은 우리 미술반에서 해마다 두차례씩 하는 전시회에 두번째 참가작품으로 내놓았다.
내가 문리대 미술반에 들어가서 처음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은 파스텔로 그린 '아마릴리스'이다.
그것은 집에서 그린 것인데 엄마가 사다 놓은 화초를 보고 하도 꽃이 정교하고 예뻐서 그려 본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꽃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누가 그 그림을 보더니 그것이 아마릴리스라고 했다. 전시회에서 그 그림을 본 한 생물학과 학생이 감탄을 했다. 꽃의 묘사가 마치 생물학과에서 각종 식물을 정밀 묘사하듯이 자세하고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아주 자세히 관찰을 했고 또 표현도 관찰한 만큼 자세히 된 것 같았다.
그 그림은 액자를 한 그대로 집에 걸어 두었다가 액자가 뒤틀리는 바람에 떼어두었었는데, 얼마 지나 액자를 다시 맞춰 내가 사랑하는 부엌의 입구 왼쪽 벽에 걸어 놓고 부엌을 드나들며 색바랜 그 그림을 보았다.
(지금은 그 자리에 99년 개인전 작품중 '불새의 춤'이 걸려 있다.)
두번째 전시회에 내놓았던 봉은사의 '뒷뜰'은 그 이후 지금까지 죽 친정(옛날엔 '우리집'이었는데)에 걸려 있다.
지금은 빛이 바래서 그나마 무난한 색깔들이 다 희미해지고 내가 그토록 선명하게 나타내고 싶어했던 분홍색 진달래는 먼지 속에 파묻힌 마른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그림을 보면 따뜻한 마음이 깃든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전시회가 끝나고 전시회 기념으로 받은 작은 스케치북은 나에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방에서 친구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대강당에서 예배시간에 살짝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뒷모습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미술반에는 좋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내가 1학년 때 미술반 반장을 하던 언니가 예뻐서 좋았다. 또 그 미술반은 역사와 전통이 있어서 전시회를 할 때면 찬조작품을 내놓는 졸업생 선배들도 많았다. 그 미술반활동이 지금까지 나의 그림 생활의 밑바탕이 되고 힘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 미술반 전시회에 졸업생 찬조작품을 내놓지?
(사진=대학 1학년때 문리대 미술반 전시회 끝난 뒤 합평회때 모습. 사진의 오른쪽 위에 보이는 그림이 '아마릴리스'이다)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 하룻만에 다 완성을 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림이 부실해서 그런 것이었겟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그림이 월등히 좋아진 것도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감히 어떻게 얘기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지금이 게을러져서 그런 건가? 워낙 늦게 그림을 시작해서? 그렇다고 얘기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그 시절에는 야외스케치를 간다하면 늘 부지런을 떨어서 오전에 다 자리잡고 밑그림 그려놓고 점심을 먹었는데 그 뒤 회사 동아리에서 야외스케치를 갈때는 오전에 시작해 본 적이 없다. 늘 점심을 먹은 뒤에야 시작했으니까. (물론 요즘은 아니다.)
왼쪽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고 오른쪽에는 절의 담벼락과 치켜올라간 처마가 옆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가운데 조그만 뒷마당의 흙이 보이고 조금 멀리로는 굴뚝도 보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그 풍경에서 마음에 들고 그래서 하이라이트로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왼쪽의 커다란 푸른 나무 아래로 작지만 화사하게 피어있는 분홍색 진달래였다. 나는 그 진달래를 아주 예쁘고 눈에 띄는 분홍색으로 선명하게 칠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게 생각만큼 진해지지도 않고 선명해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색을 눈에 띄게 강하게 쓴다는 게 그 시절의 내게는 참으로 어려웠다. 아마도 그림에 자신이 없으니까 그저 눈에 띄지 않고 무난한 색깔만 썼던 것 같다.
하여튼 나는 그때로서는 최선을 다해서 그 분홍색을 살리려고 애써서 그림을 일단 완성시켰다.
그 그림은 우리 미술반에서 해마다 두차례씩 하는 전시회에 두번째 참가작품으로 내놓았다.
내가 문리대 미술반에 들어가서 처음 전시회에 출품한 그림은 파스텔로 그린 '아마릴리스'이다.
그것은 집에서 그린 것인데 엄마가 사다 놓은 화초를 보고 하도 꽃이 정교하고 예뻐서 그려 본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는 그 꽃이름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누가 그 그림을 보더니 그것이 아마릴리스라고 했다. 전시회에서 그 그림을 본 한 생물학과 학생이 감탄을 했다. 꽃의 묘사가 마치 생물학과에서 각종 식물을 정밀 묘사하듯이 자세하고 확실하다는 것이었다. 내가 봐도 아주 자세히 관찰을 했고 또 표현도 관찰한 만큼 자세히 된 것 같았다.
그 그림은 액자를 한 그대로 집에 걸어 두었다가 액자가 뒤틀리는 바람에 떼어두었었는데, 얼마 지나 액자를 다시 맞춰 내가 사랑하는 부엌의 입구 왼쪽 벽에 걸어 놓고 부엌을 드나들며 색바랜 그 그림을 보았다.
(지금은 그 자리에 99년 개인전 작품중 '불새의 춤'이 걸려 있다.)
두번째 전시회에 내놓았던 봉은사의 '뒷뜰'은 그 이후 지금까지 죽 친정(옛날엔 '우리집'이었는데)에 걸려 있다.
지금은 빛이 바래서 그나마 무난한 색깔들이 다 희미해지고 내가 그토록 선명하게 나타내고 싶어했던 분홍색 진달래는 먼지 속에 파묻힌 마른꽃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 그림을 보면 따뜻한 마음이 깃든다.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던 모습이 새삼스럽다.
전시회가 끝나고 전시회 기념으로 받은 작은 스케치북은 나에게 계속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다. 나는 그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다방에서 친구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대강당에서 예배시간에 살짝 앞자리에 앉은 친구의 뒷모습을 스케치하기도 했다.
미술반에는 좋은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특히 내가 1학년 때 미술반 반장을 하던 언니가 예뻐서 좋았다. 또 그 미술반은 역사와 전통이 있어서 전시회를 할 때면 찬조작품을 내놓는 졸업생 선배들도 많았다. 그 미술반활동이 지금까지 나의 그림 생활의 밑바탕이 되고 힘이 되고 있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그 미술반 전시회에 졸업생 찬조작품을 내놓지?
(사진=대학 1학년때 문리대 미술반 전시회 끝난 뒤 합평회때 모습. 사진의 오른쪽 위에 보이는 그림이 '아마릴리스'이다)
'그림'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겨울 강촌 (0) | 2001.02.11 |
---|---|
맑은날에 그리고 싶은 노래(하) (0) | 2001.01.31 |
문리대 미술반 이야기(상) (0) | 2001.01.31 |
바리공주 (0) | 2001.01.29 |
크리스마스 카드와 연하장 (0) | 2001.01.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