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엄마같은 엄마가 또 있을까.
우리엄마는 참으로 ‘효모’ (자식한테 효도하는 어머니) 시다.
살아계실 때는 건강해서 자손들한테 부담 한 번 안
주시더니
돌아가실 때도 자손들한테 부담되지 않도록 자손들 힘들지 않도록
깨끗하게 수이 돌아가셨다.
자손들 있는 대로 다 효자 효녀 효부 효손 만들어놓고
혼자서 얌전히 돌아가셨다.
엄마의 90년 세월은 그리 조용하다고만 할 수 없으나
갈 때는 조용히 가셨다.
엄마는 자식들에게 이별을 할 시간적 여유를 주시면서도
그 시간 내내 정갈함을 지켜
자식들에게 안 좋은 모습을 하나도 안
보여주셨다.
생각보다 좀 일찍 떠나셔서 아쉬움은 많이 남지만
좀더 오래 계셨더라도 자식으로서의 아쉬움은 여전할 터이고,
오히려 엄마는 그
보다 더 멀리를 내다보신 듯 하다.
아쉬움을 줄지언정 자식들로부터 정 떨어지는 것을 원치는 않으셨던 것일 게다.
병원에서 퇴원해 집에 누워 계신지 여섯달 만에 돌아가셨다.
그동안 점점 몸이 쇠약해지어 식사량과 횟수가 줄고
기력이 점점
없어져 드디어 혼자서는 일어나 앉지도 못하셨지만
다행히 혼자서 몸은 뒤척여 등창이 나지 않도록
스스로를 살피셨다.
엄마는, 엄마가 평소에 말씀하시던, 자다가 그냥 영원히 갔으면 좋겠다는 엄마의 소원을
아주 정확히는 아니어도
거의 그 비슷한
정도로 이루신 셈이다.
엄마가 만들어놓은 엄마집의 엄마방의 엄마 자리에서 30년을 주무시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같은 집에 살면서도 오매불망 그리워 못 잊어하는
큰아들 품에 안겨서 주무시듯 가셨으니 말이다.
자식으로서는 아쉽지만 생각해보면
엄마는 잘 사신 편이다.
10년동안 곁에 있어주었던 맏딸을 가슴에 묻고
까탈스런
시집살이로 지내온 평생은 고달팠지만
그래도 살아있는 자식들은 엇나가지 않았고
쉽지 않은 회혼례도 치르시고
가시기 전 비록 몇
달간이지만 나이 든 두 딸과 번갈아가며 같이 잠도 주무시고.
하지만 그것은 엄마한테보다는
우리한테 다행한 일이었다.
엄마가 우리한테 주신 크나큰 마지막 선물이다.
그 선물로 앞으로의
긴 날들을 견디어야만 한다.
지금은 실감이 안 난다.
그래서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지만
시일이 점점 지나
실감이 나면
허전하고 허망해서 어찌 지낼지 걱정이다.
내가 걱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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