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든 소녀의 꿈 이야기-고향의 꿈
내가 나이 어린 소녀였을 때
사람들은 나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자주 물었다.
내가 수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랬다.
'빨가벗고 백리를 뛴다는 수원 깍쟁이로구만'
그러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거 같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금도 여전히 그 뜻을 모른다)
그냥 억울했었다.
나는 깍쟁이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말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다행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리숙하고 바보같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까봐
겁이 났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똑똑하게 보아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나의 고향이 수원이기 때문에
수원에 웬지 정이 간다.
비록 태어나 삼사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이제 옛날의 그 고향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고향이라면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개천이 있는
그런 풍경이 그려진다.
비록 실제 고향은
사각창문으로 보이는 사각건물로 채워진 도시라 해도
마음 속에서는
낮은 뒷동산과
꼬부라진 언덕길과
얕은 시냇물이 있는
그런 고향을 그린다.
언젠가 이 나라에서
그런 모습이 다 사라진다해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고향은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일 거다.
^.^*
< 환상속의 고향 >

내가 나이 어린 소녀였을 때
사람들은 나보고 고향이 어디냐고 자주 물었다.
내가 수원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그랬다.
'빨가벗고 백리를 뛴다는 수원 깍쟁이로구만'
그러면서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거 같이 보인다고 했다.
나는 그 뜻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지금도 여전히 그 뜻을 모른다)
그냥 억울했었다.
나는 깍쟁이가 아닌데 말이다.
그러나 조금씩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말이 그리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조금은 다행스럽기도 했다.
왜냐하면
내가 어리숙하고 바보같다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차릴까봐
겁이 났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똑똑하게 보아준다는 것이
나에게는 훨씬 안심이 되는 일이었다.
어쨌든 나는 그래서,
나의 고향이 수원이기 때문에
수원에 웬지 정이 간다.
비록 태어나 삼사년 정도밖에 살지 않은 곳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묻지 않는다.
이제 옛날의 그 고향이라는 개념은
의미가 없어져버렸다.
그러나 아직도 고향이라면
산이 있고
들이 있고
개천이 있는
그런 풍경이 그려진다.
비록 실제 고향은
사각창문으로 보이는 사각건물로 채워진 도시라 해도
마음 속에서는
낮은 뒷동산과
꼬부라진 언덕길과
얕은 시냇물이 있는
그런 고향을 그린다.
언젠가 이 나라에서
그런 모습이 다 사라진다해도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고향은 늘
지금과 같은 모습일 거다.
^.^*
< 환상속의 고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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