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왕자의 크레이언(하)

여왕폐하님 2000. 11. 8. 22:03
그 그림을 어떤 식으로 그렸는지는 기억이 전혀 없다. 다만 그 근처에 가득히 들어앉았는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하나도 표현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나는 인간들은 빼고 자연과 건물만을 그렸는데 그 이유는 단지 그 많은 사람들을 그림으로 표현한다는 게 나로선 꽤 복잡하고 어려워서였다. 그것에 어떻게 색칠을 했는지도 기억이 없는데 막연히 쑥색을 많이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는 기억이고 이제 와서 그 그림의 다된 모양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특히 색깔이.

그림을 다 그린 다음에 본부에 제출하려고 갈 때 작은 오빠가 그것을 사진찍겠다고 그림을 펴서 들고 서 있으라고 했지만 나는 챙피해서 그러질 못했다. 여러 사람 앞에서 내 그림을 들고 서 있을 만큼 내 그림이 잘 됐다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림의 잘되고 못되고에 상관없이 하여튼 여러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바닥에서 나의 그림을 확 펼쳐들고 서 있는다는 것이 매우 쑥스럽게 느껴질만큼 나는 무척 수줍고 숫기없는 아이였다.
그것이 지금 후회가 되긴 하지만 그걸 찍었다 해도 그 그림의 색깔을 기억하는 데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건 흑백 사진이니까.

그림을 그리기 전, 그리는 도중, 그리고 난 후 오빠들은 계속 사진을 찍었다. 각자의 독사진, 나와 오빠와 같이 있는 장면, 내가 친구와 같이 서 있는 것, 내가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습 등.
긴 생머리를 뒷통수 중간에다 묶고 무릎덮는 치마와 동그란 스탠칼라가 달린 블라우스를 입고 커다란 화판을 옆구리에 낀 모습이 지금 보면 정말 촌스럽다.

그리고는 잊어 버렸다.
내가 상을 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커녕 상을 타고 싶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 아예 대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지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아침 조회 시간에 내 이름이 불린 것이다. 최우수상, 우수상은 물론 아니고 특선, 가작도 아니고 제일 끄트머리인 입선이었다. 그렇지만 물론 기분은 좋았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이었으니 그랬고 그것이 전국대회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상장은 그 시절 늘 받던 우등상장(아마 16절지쯤 됐을 것)보다는 컸고(8절지가 아니었을까), 상품은 16가지의 색깔이 든 조그만 크레용 한 상자였다.

그렇게 해서 나는 전국 규모의 미술대회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을 타게 되었던 것이다.
그때 받은 상품인 가로 14센티미터 세로 8센티미터의 `왕자의 크레이언` 조그만 상자는지금까지 나의 문갑 서랍 속에서 `준가보'로 보관되고 있다. 나는 그것을 받은 뒤에 조금 써 보기도 했지만 마치 색깔 입힌 양초같은 그 크레용은 그림을 그리기에는 품질이 너무 좋지 않았다. 당시에는 좋은 편에 속했었는지도 모르지만 그 후 질 좋은 크레파스들이 많이 나오는 바람에 그것은 그냥 기념품으로 보관해 두는 것이 서로간(크레용과 나)에 좋았다.

지금 그것을 보는 나의 아이들은 그 물건의 새로움(아이들에게는)에 신기해 하고 그 물건의 오래됨(38년 전)에 놀라고 그 물건의 귀중함(엄마가 미술 대회 상품으로 탄 것이라는)에 고개를 끄덕인다. 어쨌든 그것은 내게 남아 있는, 그것도 그림 대회에서 받은, 유일한 상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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