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5학년 때 한국일보사에서 주최하는 '군사혁명 1주년 기념 전국 어린이 미술실기대회'가 있었는데 나도 어찌어찌해서 뽑혀나가게 되었다.
나는 국민학교 때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좀 그리는 편이었지만 지극히 조용하고 너무나 모범적인 어린이여서 선생님들 눈에 띄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나를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내보낸 것을 보면 내가 그림을 웬만큼 그리긴 한 모양이다.
1962년 어느 봄날의 덕수궁에서다.
대학생이던 큰오빠와 고등학생 작은오빠와 같이 갔다.
지금은 덕수궁이 매우 좁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아주 커다란 궁궐같았다. 물론 내가 지금보다 어려서 그랬겠지만.
나는 솔직이 그날의 상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날이 일요일이었는지 아니면 평일이었는지, 아침 몇시에 모여서 몇시까지 그렸는지, 버스를 타고 갔는지 아니면 걸어 갔는지(당시 우리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35-7번지였고 학교는 후암동에 있는 삼광국민학교였으니 덕수궁과는 멀지 않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는지 아니면 사 먹었는지, 싸가지고 갔다면 무얼 싸가지고 갔는지, 크레파스는 24색짜리였는지 아니면 36색짜리였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소박한 12색이었는지, 참가비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도화지는 내가 샀는지 아니면 대회본부에서 주었는지, 그림은 어떻게 그렸는지 등등.
하여튼 내가 생각이 나는 것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많이 와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 들었으니 별로 크지 않은 덕수궁이 꽉 찼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단편적이나마 그때의 상황을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날 찍은 사진 때문이다.
사진 찍기(찍기와 찍히기 둘 다)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닮은 오빠들과 나는 그날의 행사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해 두었고 훗날 그 사진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에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사진과 연관시켜 그날을 다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특별히 떨리거나 자신만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무덤덤했다. 대회라는 느낌도 딱히 없었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도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감도 없었다. 그냥 평소의 나대로 묵묵히 행동했다.
하여튼 우리(오빠들과 나)는 그림 그릴 장소를 찾아 다녔다. 물론 그릴 대상이 보이는 장소를 말이다. 얼만큼이나 오랫동안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확실친 않지만 아주 빨리 장소를 결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장소도 빤한 데다 사람들까지 복닥거리니 그릴 것을 찾기가 수월할 수는 없었다.
덕수궁안을 한참 헤매돌다가 드디어 그릴 것을 정했는데 그것은 궁궐 건물 세개가 비껴 겹쳐진 모습으로 맨앞에 있는 치켜진 궁궐 지붕의 처마끝은 마치 용의 머리같이 보였다.
저 뒤로는 서울 시청건물이 있었고 웬일인지 하늘에는 애드벌룬도 떠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정확히 그 모양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을 작은 오빠가 사진으로 찍어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국민학교 때 공부도 잘하고 그림도 좀 그리는 편이었지만 지극히 조용하고 너무나 모범적인 어린이여서 선생님들 눈에 띄기가 힘들었다. 그런데도 나를 학교 대표로 미술대회에 내보낸 것을 보면 내가 그림을 웬만큼 그리긴 한 모양이다.
1962년 어느 봄날의 덕수궁에서다.
대학생이던 큰오빠와 고등학생 작은오빠와 같이 갔다.
지금은 덕수궁이 매우 좁게 느껴지지만 그때는 아주 커다란 궁궐같았다. 물론 내가 지금보다 어려서 그랬겠지만.
나는 솔직이 그날의 상황이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그날이 일요일이었는지 아니면 평일이었는지, 아침 몇시에 모여서 몇시까지 그렸는지, 버스를 타고 갔는지 아니면 걸어 갔는지(당시 우리집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 335-7번지였고 학교는 후암동에 있는 삼광국민학교였으니 덕수궁과는 멀지 않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지고 갔는지 아니면 사 먹었는지, 싸가지고 갔다면 무얼 싸가지고 갔는지, 크레파스는 24색짜리였는지 아니면 36색짜리였는지, 그도 저도 아니면 소박한 12색이었는지, 참가비는 있었는지 없었는지, 도화지는 내가 샀는지 아니면 대회본부에서 주었는지, 그림은 어떻게 그렸는지 등등.
하여튼 내가 생각이 나는 것은 아이들과 어른들이 많이 와 있었다는 것이다. 전국에서 모여 들었으니 별로 크지 않은 덕수궁이 꽉 찼을 것이다.
지금 내가 단편적이나마 그때의 상황을 기억할 수 있는 이유는 그날 찍은 사진 때문이다.
사진 찍기(찍기와 찍히기 둘 다)를 좋아하시는 아버지를 닮은 오빠들과 나는 그날의 행사도 빼놓지 않고 기록을 해 두었고 훗날 그 사진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에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그 사진과 연관시켜 그날을 다소나마 기억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그날 특별히 떨리거나 자신만만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냥 무덤덤했다. 대회라는 느낌도 딱히 없었고 학교에서 보는 시험도 아니었기 때문에 긴장감도 없었다. 그냥 평소의 나대로 묵묵히 행동했다.
하여튼 우리(오빠들과 나)는 그림 그릴 장소를 찾아 다녔다. 물론 그릴 대상이 보이는 장소를 말이다. 얼만큼이나 오랫동안 돌아다녔는지 기억이 확실친 않지만 아주 빨리 장소를 결정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장소도 빤한 데다 사람들까지 복닥거리니 그릴 것을 찾기가 수월할 수는 없었다.
덕수궁안을 한참 헤매돌다가 드디어 그릴 것을 정했는데 그것은 궁궐 건물 세개가 비껴 겹쳐진 모습으로 맨앞에 있는 치켜진 궁궐 지붕의 처마끝은 마치 용의 머리같이 보였다.
저 뒤로는 서울 시청건물이 있었고 웬일인지 하늘에는 애드벌룬도 떠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정확히 그 모양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것을 작은 오빠가 사진으로 찍어 놓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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