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여왕폐하님 2003. 5. 9. 23:47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옛날에 그런 영화제목이 있었다.
외국영화였는데 워낙 어려서 그 영화의 내용이 어떤건지 과연 내가 보았는지 아닌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그 영화는 같은 제목을 가진 유명한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었을 거다.
물론 그 영화를 보았다해도 상영당시에 보았을 리는 없고
흑백 텔레비전에서 밤중에 졸면서 보았을 수는 있을 텐데,
사실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에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소설을 읽은 것도 같다.
그런데 작가나 내용을 지금은 기억 못한다.
꽤나 유명한 작가이고 내용인 거 같은데.

어쨌든 그건 그렇고,
우리 모두는 그렇다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는 옛날로 돌아갈 수 없다.

내가 동아방송에서 쫓겨나 바깥에서 헤맬 때
꽤 오랫동안이나 언젠가는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지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참으로 억울했다.

그 조용하다못해 적막한 스튜디오에서 양탄자 퀴퀴한 곰팡이 냄새 맡으며
방송시작 빨간불을 기다리는 스트레스를 다시는 경험하지 못하게 된다니
참으로 서운했다.

아무리 억울하고 아무리 서운해도
나는 다시는 그 스튜디오로 돌아가지 못한다.

내가 팔꿈치 뼈를 부서뜨려 수술을 받고 물리치료를 받을 때에도
초기 한동안은 언젠가는 다시 원상회복이 되리라고 생각하며 참고 지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다시는 옛날대로 회복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참으로 허망했다.

나의 양쪽 볼을 양쪽 손바닥으로 똑같이 두드릴 수가 없고
목걸이를 채울 때나 목에 리본을 맬 때나 한쪽 팔 때문에 힘들어하며
옷의 맨 위에 있는 단추는 한쪽 손으로밖에 채울 수 없고
주차장에서 주차카드 뽑느라고 아무리 팔을 뻗어도 팔은 더 이상 펼쳐지지 않을 때
참으로 허망하고 민망하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서글픈 점은
이제 다시는 더 이상 옛날처럼 아름답고 우아하게 춤을 출 수 없다는 사실이다.
신나게 두 팔을 뻗어도 한쪽은 늘 구부러져 있으니,
똑같이 두 팔을 구부려도 한쪽 팔은 늘 덜 접혀 있으니.
그 옛날 내가 받은 '한국의 이사도라'라는 이름은 다시는 실현 불가능한 셈이다.
물론 이 나이에 춤을 추어봤자 남들이 보기에는 우아는커녕 우스꽝스럽기만 하겠지만
아무튼 나의 마음은 그렇다.
참으로 허탈하다.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나의 얼굴생김새를 익혀왔다.
그리고 외출을 할 때마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오랫동안 보아왔다.
평소에는 그냥 지나치다가 어느 순간 나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는 때가 있다.
그리고 나의 얼굴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슬프다.

아무리 거울을 닦아놓고 노려보며 이것저것 바르고 또 발라도
옛날의 그 깨끗함과 싱싱함은 되살아나지 않는다.
눈물이 흐른다.

나는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다.
나의 작고 귀여운 아이들이 있는 그 곳으로
탄력있고 소담스런 얼굴의 내가 있는 그 시절로
엄마 저고리 소매끝 붙잡고 졸졸 따라다니던 그 길로.

그대 다시는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리.
^.^*
<2002년도 전시작품 중에서 '고향이야기'>




'아직도 생각중'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0) 2003.07.20
이렇게 갑자기 울고싶어질땐 어떻게 해야하나  (0) 2003.06.08
글쓰기-그 이후  (0) 2003.03.27
고마움의 편지  (0) 2003.01.28
새해에는  (0) 2003.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