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글쓰기-그 이후

여왕폐하님 2003. 3. 27. 20:02
글을 쓴다는 것은 내게는 특별한 일이다.
뭐라고 할까, 나에게 있어서 글이라는 것은
내 안에 가득 들어있는 욕심이다.

내가 글을 쓴다함은 그만큼, 글을 쓸만큼의 감동이 있다는 뜻이고,
거기 덧붙여 그 감동이 담겨있는 글을 많은 다른사람들에게 자랑하고픈 의도가 있다는 뜻이다.

예전엔 감동 자체에 비중이 더 많았지만
요즘은 그보다는 남들에게 나의 감동을 알리고 싶은데에 더 많은 신경을 쓴다.
그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내가 그러한 나의 속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을 때에는 멋모르고 글을 썼다.
그리고 남에게 보이고 칭찬듣고 기분이 좋았었다.

나의 속마음을 알고나서도 한동안은 모른척했다.
아닌 듯, 감동이 다인 듯 나는 글을 쓰고
또 남들에게 과시를 했다.

이제는 나의 속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감출 수가 없다. 감출 여력이 내게 남아있지 않다.
무엇이든 속이려면 힘을 들여야하는데
나는 게으르고 귀찮아서 부지런하게 앞뒤 맞춰가면서
남을 속일 재간이 없다.

대신 이제는 글을 쓰기를 자제한다.
감동이 많다고해서 꼭 그것을 밖으로 내놓을 필요는 없다.
진짜로 가슴이 벅찰때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정말로 아름다운 경치를 보았을때 그걸 소리내서 사람들에게 소리쳐가면서 아름답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로 그 아름다움에 감동받은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도 아름다운 경치를 볼수있다는 것을 과시하고픈 마음에서 하는
유치한 행동일 뿐이다.

글쓰기가 줄어든 이후에도 나는 많은 감동적인 일들을 경험했다.
주로 작은 일들이지만, 예전같았으면 그것으로 몇장의 글은 족히 썼고,
또 그 글을 자랑했을 것이다.
'나의 마음이 이렇다, 나는 이렇게 감성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렇게 섬세하고도 예민하고도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이렇게 글로도 표현할 수 있다'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것에 회의를 느낀다.
회의를 느낀다기보다는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내가 내 맘 속에서 느끼고 벅차하면되지 구태여 그걸 남들에게 광고할것까지 뭐 있나, 그것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모든 것이 허무한 이 인생사에서 그런 감동의 기록이 무슨 의미란 말인가.

그러나 나는 또 전과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중이다.
지금 이 글도 또한 나의 마음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냐.
^.^*

<그림-2002개인전 출품작 중에서
'아비뇽의 사람들1, 2, 3'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