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그냥 속절없이 쓸쓸했다

여왕폐하님 2006. 4. 22. 00:32
 

그냥 속절없이 쓸쓸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행동이 의외의 행동이 아니란 걸 알았다.

작가들도 많은 자료를 수집했겠지. 많은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들었겠지.

그러니까 그렇게 썼겠지.


혼자서 시내 나가 전시 보고 자판기 커피 마시고 고궁 돌아보고 벤치에 앉고 하는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다. 늘상 할 수 있는 일이다.

근데 자정전 뒤 계단식 정원의 돌계단 위에 그렇게 오두마니 앉아보겠다는 생각은- 그래 생각은 할 수 있다. 그러나 평소라면 그렇게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난 아까 그렇게 했다. 그렇게 오도마니 앉아 있으면서 아무렇지도 않았다.

누가 날 보아도 별로 이상하지도 않았다. 남의 시선이 잘 안 느껴졌다.

내 기분에 너무 취해 있으니까 남의 시선이 의식이 안 되었다.


그냥 속절없이 심란했다.

무슨 큰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남들이 들으면 별로 대수롭게 생각할 일도 아니지만,

나는 그냥 속절없이 눈물도 어리고 한숨도 나오고 심각해지기도 하고 그랬다.


누구를 찾아 얘기를 할까하는 생각도 해보았으나 역시 아니었다. 역시 나 혼자가 나았다.

우선은 혼자였다. 그렇게 그냥 혼자서 조용히 마음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별일 아니라면서도 내 기분은 절대 평상과 같을 수는 없었다.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물론 내가 자만한 거였지만.


남들이라고 다 당하는 일을 나라고 안 당하라는 보장이 없지 않으냐.

그렇지만 나는 팔도 부러졌었는데 이것까지 또 -

그러나 나보다 더 많이 당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는 지금 이렇게 맘이 심란하고 서글프지만 남들은 그저 보통이라고 생각할 뿐일 텐데,

나도 이전에 그러지 않았었나.

친구들이 수술을 하고 그랬을 때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무심했었다.

당사자는 다 어려운 일인데-


날씨 좋은 오늘, 바바리를 휘날리며 모자를 쓰고 분위기를 잡았다.

마음이 좋고 밝은 날은 그렇게 분위기를 잡을 수는 없을 거 같다.

그냥 속절없이 쓸쓸하고 심란했던 오늘, 그래서 경희궁의 뒷산을 빙 걸어볼 수 있었다.

2006.4.21.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