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생각중

가을산

여왕폐하님 2017. 1. 3. 17:25

<아래 글은 2000년도에 쓴 글입니다.

그러고보니 저의 '가을'은 오래전부터 시작되었었네요.>


몇년 전 세미나차 11월의 내장산엘 갈 수 있었다.

말로만 듣던 단풍의 내장산 얘기를 듣자마자 나는욕심이 생겼다.

이번엔 정말 욕심이 생겼다.

그 아름다운, 아름다울 것 같은 가을의 색깔들을 내 것으로 한 번 해 보아야겠다는.

그래서 나는 최선의, 최소한의 준비를 했다.

스케치북을 대 중 소로 세 권씩이나 가지고 갔다.

거기에 4비 연필은 물론, 열두색깔 파스텔까지.비록 짐만 되고 말았지만.

하지만 괜히 갖고 갔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안 가지고 갔었더라면 후회를 했을 것이다.`혹시'하는 의구심으로.


2박3일의 세미나 기간은 생각보다 훨씬 여유가 없었다.

내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끝나는 날 아침 두어시간뿐이었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이라도 할애해서 나의 욕심을채워야 하나 포기해야 하나 고심하다가

결국 결정을 했다. 

역시 내 욕심을 채우기에는 아직 나는 역부족이라는 겸손한 생각을 갖기로.

그리고 그 결정은 참으로 잘 내린 결정이었다.

하마터면 나는 쓸데없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그림도 그르치고 

그 가을산, 나를 닮은 그화려하고 쓸쓸한 가을산도 만나지 못할 뻔했다.

새빨간 단풍밭에 앉아서 따끈한 커피를 마시며

노랑 주황 빨강 현란한 색깔들로 물든 가을산을보았다.

 

아름답고 예쁜 산이다.

그러나 가을의 산을 물들이고 있는 그 모든색깔들의 배합이 구슬프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그것은 그 현란함이 조금 있으면 닥쳐올 겨울,

겨울 전의 마지막 몸부림 같아서일까?나처럼? 

그래서 아름다운 가을 산을 보면서

나는 연민과 슬픔을 느끼는 걸까?

닥치기 전에는 모르는 40대의 풍요로움과 외로움을

가을의 산과 내가 같이 나누고 있었다.


가을의 산은 색깔이 아무리 화려해도 쓸쓸해 보인다.

쓸쓸함과 허전함과 안쓰러움을 지울수가 없다.

봄의 산은 색깔이 아무리 여려도 

그 속에꽉 차 있는 희망과 솟아오름으로 인해

늘 즐거움으로 방싯 웃고 있으나

가을의 산은 그 강렬한 색깔들을 가지고서도

내게서 연민의 감정밖에는 끌어내지 못한다.

마치 내가, 젊었을 때는 화장을 하나도 안해도신선하고 예쁘게만 보였으나 

오십이 된 지금

아무리 뽀얗게 화장을 해도 그 옛날의 발랄한

그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에 슬프듯이.


가을산은 그러나 나보다 행복하다.

그 가을 낙엽 이불 털어내고

겨울 하얀 눈이불 덮고 한 숨 떨고 나면

다시 봄으로 태어나므로.


그러나 나는 그럴 수 없다.

가을 깊어 더욱 깊어

종국에는 차가운 겨울로 접어들어 그 겨울 내내 떨어도

내게 봄은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가을의 나는 또다시 슬퍼진다.

나도 산처럼 봄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만

그런 욕심은 허망스럽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가을산의 그 풍부하고부드러운 갖가지 색깔들을 모두 내 안에 품어,

겨울이 와서 순 하얀 색깔과 칙칙한 회색이 오기전에

여러가지 아름다운 색깔을

마지막으로 품어 안을 생각을 한다.

언젠가는 그 모든 색깔들을 내가 원하는대로

화폭에 쏟아넣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기대하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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